9월 22일 유엔총회장, 이란 좌석이 비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절멸”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이란 대표단 대다수가 집단으로 자리를 떴다. 이튿날에는 미국 좌석이 비었다.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의 연설장에 미국 측 인사는 단 한 명 앉아 있었고, 그마저 연설 도중 자리를 떠났다. 미국 대표단석이 통째로 빈 것이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는 테러의 희생자”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대화를 제안했다. 이란은 항복처럼 보이지 않는 출구를 찾고, 트럼프는 “합의 아니면 절멸”이라는 선택지를 내밀었다. 두 연설이 맞물린 자리에서 미국 언론과 이스라엘, 이란은 서로 다른 곳을 읽었다.

사진을 든 전시 대통령

23일 수요일,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연단에서 사진 여러 장을 들어 보였다. 2월 말 개전 첫날 미국·이스라엘의 합동 공습으로 숨진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 그리고 남부 도시 미납의 초등학교 피해 현장이다. 이란은 2월 두 차례 미국 공습으로 민간인 178명이 숨졌고 대부분이 어린이라고 주장한다. 호주 ABC는 미국 측 인사가 이 대목 직후 자리를 떴다고 전했다.

“미국 대통령은 우리를 테러리스트라고 했다. 우리는 테러의 희생자다.” 그는 “고개를 숙이지도, 무릎을 꿇지도 않았다”고도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과 전쟁 중인 나라의 지도자가 유엔에서 직접 연설한 것은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을 겨냥한 대목도 있었다. “핵무기는 이스라엘에 있는데, 사찰관은 이란에 와 있다.” 그러나 연설의 끝은 대화였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무력의 언어를 받아들이지 않는 대화와 외교, 협상에는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이분법에 맞선 답장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 연단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란이 “지금보다 훨씬 위대한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는 합의”를 할 것인지, 아니면 “이슬람공화국을 신속히 절멸시킬” 것인지 큰 결정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Foreign Policy는 페제시키안 연설을 이 위협에 대한 수사적 반격으로 규정했다. 이란 대통령은 “테러리스트를 훈련하고 보호하는 자들이 우리를 그렇게 부른다”며 “우리는 스스로를 지켰을 뿐”이라고 받아쳤다.

미국 언론, 항변과 연출 사이에서 갈렸다

미국 안에서도 평가는 갈렸다. 뉴스위크 분석은 이란의 공개 메시지가 저항이어도 실제로 필요한 것은 “항복처럼 보이지 않는 협상 출구”라고 진단했다. 이 매체는 이란 고위 당국자가 미국이 군사 압박을 풀고 항구 봉쇄를 해제하면 호르무즈 해협을 일주일 안에 다시 열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다만 익명 발언이다.

폭스뉴스에 출연한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베남 벤 탈레블루 선임연구원은 이란의 피해자 프레임을 “천박하다(crass)“고 평했다. 그는 트럼프가 “패를 쥐고 있다는 걸 알기에” 연설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자지라가 인용한 미국 전문가들의 시각도 엇갈렸다. 국제정책센터의 네가르 모르타자비 선임연구원은 외교적 출구를 원한다는 신호로 읽었다. 전 튀니지 주재 미국 대사 조이 후드는 익숙한 수사의 반복이고 구체적 평화안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 연설장을 비우고 말로 답했다

이스라엘 대표단은 연설장에 나오지 않았다. 다니 다논 유엔주재 이스라엘 대사는 이란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비난하러 유엔에 왔다며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자국민에게 저지른 만행에 집중해야 한다”고도 했다.

24일 목요일에는 네타냐후 총리가 총회 연단에 선다. 이스라엘 미트빔연구소의 니므로드 고렌 소장은 네타냐후 총리가 이란 위협을 부각해 미국의 가까운 동맹이라는 이미지를 굳히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란 안에서도 갈렸다

그러나 연설을 다르게 읽은 곳은 이란 안에도 있었다. 보수 일간 카이한은 방미 전부터 “뉴욕은 웃음과 협상의 장소가 아니다”라며 유엔을 “미국 범죄의 법정”으로 만들라고 요구했다. 대통령 보좌관 모함마드 자파르 가엠파나는 방미 취소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전했지만,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뜻을 꺾지 않았다.

군부 쪽 반응은 달랐다. 최고지도자 군사고문 야히아 라힘 사파비는 “혁명 지도자가 국가 이익에 맞다고 보고 협상의 문을 열어뒀다면 그것은 매우 중요한 신중함의 표시”라고 말했다. 혁명수비대와 가까운 타스님통신은 학교와 병원 등 민간 시설 피해를 언급한 대목을 부각해 전했다.

이란인터내셔널에는 다른 반응이 실렸다. 이 매체에 글을 보낸 한 이란인은 “이슬람공화국은 자신보다 센 상대에게만 대화를 원하고, 힘없는 자국민은 괴롭힌다”고 적었다. 여론조사가 아니라 매체에 보내온 글이다.

15년 전과 다른 퇴장

이란 대통령의 유엔 연설에 미국이 자리를 뜬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1년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9·11 음모론을 꺼냈을 때는 미국과 유럽연합 27개 회원국 등 30여 개국 대표단이 함께 퇴장했다. 이번에는 미국 대표단석에 앉아 있던 한 명이 자리를 떴다. 이틀 연속 이어진 퇴장이지만 규모는 대칭이 아니었다. 이란은 대표단 대다수가 빠져나갔고, 미국은 처음부터 한 사람뿐이던 좌석이 비었다.

2024년 첫 유엔 연설에서 서방과의 관계 개선 의사를 밝혔던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번엔 전쟁 중인 대통령으로 같은 연단에 섰다. 다논 대사는 연설 뒤 이렇게 말했다. “내년에는 새로운 지도자, 진정한 지도자가 이란 국민을 대표해 이 자리에 오기를 바라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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